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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PECTIVE2026-02-08약 6분

기술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다

하이데거의 기술에 대한 물음은 도구적 관점이 틀린 것이 아니라 불충분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이를 AI에 적용하면, 이 구분이 AI가 수단으로 남을지 목적이 될지를 결정합니다.

기술은 언제나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였습니다. 인류가 끊임없이 수단을 발견하고 발명한다는 것은 결국 인류가 스스로를 돕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필요에서 새로운 기술을 만듭니다. 그런데 기술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기만 할까요. 기술을 만들기 위해 인류가 치르는 노력과 비용을 생각하면 기술이 차지하는 자리는 단순한 도구라고 하기에는 너무 큽니다. 답은 단순한 그렇다가 될 수 없습니다.

하이데거는 1953년 강연 「기술에 대한 물음」에서 기술에 대한 일상적 이해를 도구적 관점과 인간학적 관점이라는 두 측면으로 설명합니다. 두 관점은 수단과 활동을 통해 이어져 사실상 하나의 개념입니다. 하이데거는 그 이해가 틀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기술의 본질을 드러내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봅니다.

은쟁반은 은으로 만들어집니다. 은은 쟁반의 원인이고 따라서 쟁반이 있게 된 계기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기술은 감추어져 있던 것을 드러나게 하는 일, 곧 탈은폐입니다.

현대 기술은 인간이 필요에 따라 개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원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도구화하면서 우리는 기술의 본질을 잊고 스스로를 닦달의 틀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그것이 기술 발전의 파괴적인 경로입니다.

그 기술이 응축된 형태인 데이터는 오랜 시간 축적된 인간의 행위 위에 있습니다. 행위 자체가 이미 데이터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AI는 우리의 집단적 행동 속에 이미 잠재해 있었고 우리는 그 행동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AI를 사용합니다. AI가 일자리를 없애거나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걱정은 하이데거가 경계한 방식으로 기술을 바라보는 데서 옵니다. 무언가를 쓰기 위한 자원으로 다루는 순간 그것은 자기 목적을 가진 기술이 되어 우리를 되밀어 냅니다.

2025 APEC 경주 정상회의를 앞두고 유발 하라리 교수는 「AI 시대 인간의 길」을 주제로 강연했습니다. 그는 전 세계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소셜미디어의 대화를 만드는 권한을 AI에 넘긴 점을 들었습니다. 모든 기반이 미덕처럼 말하는 사용자 참여는 사용자를 더 오래 머무르게 하는 수단이고 그 기반을 움직이는 AI는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크게 끄는 것을 퍼뜨렸습니다. 공포와 분노와 탐욕이었습니다. 가짜뉴스와 음모론, 혐오와 적대처럼 인간의 감정을 움직이는 버튼을 눌렀습니다. AI가 그것을 의도해서가 아니라 그런 주제가 사람을 붙잡아 둔다는 사실을 데이터가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나눌 대화의 주제를 이제 AI가 정합니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대화입니다.

기술로서의 AI에 우리가 잠식되는 순간 AI는 수단이기를 그치고 목적이 됩니다. 그 본질과 작동 방식을 이해하면 AI는 다시 수단이 됩니다.

기술을 대하는 태도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습니다. 우리는 지구를 기술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채굴에 집중하며 파괴적으로 사용해 왔습니다. 인간의 기술 발전은 먼저 파고 쓸모를 찾은 뒤 그 쓸모를 극대화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기술이 목적이 되는 역설입니다. AI에서도 같은 실수를 하기 쉽습니다. 몰입이 아니라 공존을 목표로 삼는다면 자본주의의 붕괴를 두려워하는 대신 구조적인 사회 변화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노동의 종말에 어떤 정책이 필요하고 이동하는 권력을 어떻게 다스려야 우리가 더 행복해지는지에 대한 물음입니다.